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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指定:史跡】大嶽城跡
〔うぷたきじょうせき〕
14世紀の中頃、宮古島に猛威をふるった与那覇原にほろぼされた大嶽按司の居城の跡である。城跡公園内の東側にある御嶽が、大御嶽(ウプウタキ)で、祭神はピギタリユーヌヌスである。ピギタリは、按司の長男で戦乱の世相を嘆いて農業に励んだ。与那覇原との戦いで二男知呂の按司は、東の門(中御嶽)を守って戦死し、三男金丸金按司は西の門(西御嶽)を守って戦死した。長男のピギタリは武芸を嫌い戦いからのがれて平屋久嶺にかくれて住み、作物を作って「ウプアラス原」開拓に力をつくし、後の野原村再興の基礎をつくった。
後の人々から〝ユーヌヌス″としてあがめたてられ、平屋久御嶽に祭られている。平屋久御嶽は、東御嶽、大御嶽とも称される。前井、後井(ツガ井)、石畳道などは中世の宮古の石工技術を現在に見せてくれる。前井は現在の野原部落が村建した3年後の1719年に握られたと「雍正旧記」に記録されている。
※二男は中御嶽に、三男は西御嶽に祭られている。
【Designated by the City:Historic Site】Remains of Ubutaki-jo Castle
This is a site of the castle of Ubutaki-aji who was overthrown by the Yunababaru clan which exerted tremendous influence over Miyako Island in the middle of the 14th century.
The utaki or sacred site located in the east side of the Castle Site Park is Upu-utaki, which enshrines Pigitari Yununusu. Pigitari was the first son of Ubutaki-aji. He lamented the war-torn society and devoted himself to farming. The second son, Tsuru-azu was killed in the battle with the Yunababaru clan while defending the east gate (Naka-utaki), and so was the third son, Kanimarukani-azu, while defending the west gate (Nishi-utaki). Pigitari, the first son, disliked martial arts, secluded himself from the disturbances, and resided in Hiyakumine. He grew crops and laid the foundations for the reconstruction of what later became Nobaru Village.
He was revered as Yununusu in later ages and is now enshrined in Hiyaku-utaki, which is also known as Higashi-utaki and Upu-utaki.
Mai-ga, Ato-ga (Tsuga-ga), and stone-paved streets represent the stonemasonry skills of Miyako in the middle ages. The history book “Yoseikyuki” records that the Mai-ga was dug in 1719, three years after the present Nabaru settlement was established.
*The second son is enshrined in Naka-utaki, and the third son in Nishi-utaki.
【市指定:史跡】大嶽城跡
14世紀中期,與那霸原以武力蹂躪宮古島,大嶽城跡就是被他消滅的大嶽按司之城堡遺跡。位於城跡公園內東側的御嶽又叫大御嶽(Upu-Utaki),祭拜的神名叫匹基塔利友奴奴斯。匹基塔利是按司的長子,因悲歎戰亂的世態而專心致力於農業。在和與那霸原交戰時,二子知呂按司守衛東門(中御嶽)而戰死,三子金丸金按司守衛西門(西御嶽)而戰死。長子匹基塔利不好學武,逃離戰火躲在平屋久嶺培養農作物,致力開拓「烏普阿拉斯原」,為後來的野原村再興奠定了基礎。
後世尊崇他為“友奴奴斯”,將他供奉在平屋久御嶽。平屋久御嶽又叫東御嶽或大御嶽。前井、後井以及石板道都向現代展示了中世紀宮古的石工技術。前井在『雍正舊記』中,記載道該井挖掘於現在的野原村落建村3年後的1719年。
※二子被供奉在中御嶽,三子被供奉在西御嶽。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우부타키 성터
14세기 중순, 미야코섬에 세력을 떨쳤던 오나하바루에 의해 멸망당한 우부타키 아지의 성터이다.
성터공원 내 동쪽에 있는 우타키가 우푸유타키이며, 피기타리유누누스라는 신을 모셨다. 피기타리는 아지의 장남이고, 전란 상황을 한탄하며 농사를 지었다. 요나하라루와의 전쟁에서 차남인 쓰루아즈 아지는 동문(나카우타키)를 지키다가 전사하였다. 삼남인 가니마루카니 아지는 서문(니시우타키)을 지키다가 전사했다. 장남인 피가타리는 무술을 혐오하여 전쟁을 피해 히야쿠미네에 숨어 살면서 작물을 만들어 “우푸아라스바루” 개척에 힘을 다했다. 훗날, 노바루 마을 부흥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유누누스”로써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어 히야쿠 우타키에 모셔졌다. 히야쿠 우타키는 히가시 우타키, 우푸 우타키라고도 불린다.
마이가, 아토가(쓰가가), 돌을 깐 길 등은 중세 미야코의 석공 기술을 현재에 전하고 있다. 마이가는 우물은 현재 노바루부락이 마을을 이룬 3년 후인, 1719년에 판 것이라고 역사서 『요세구기雍正旧記』에 기록되어 있다.
※ 차남은 나카 우타키에, 삼남은 니시 우타키에 모시게 되었다.
生涯学習部 生涯学習振興課
電話:0980-72-3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