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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指定典籍】 恩河里之子親雲上の墓碑

恩河里之子親雲上の墓碑

〔おんがわさとぬしぺーちんのぼひ〕

旧藩末期に建造されたもので、現存する墓碑では比較的古いものである。砂岩(高さ62cm、横33cm、幅上部5~14cm、下方17cm)を材料として使用している。

碑には右肩より「支流長真氏恩河仁也、乾隆年間卒。向姓恩河里之子親雲上墓・同治十一年壬申在番同氏花城親雲上記」の文字が刻み込まれており、下方には蓮弁の絵模様が描かれている。この碑の書を記した花城親雲上は、1872(同治11)年に首里王府から派遣された在番で、1874(同治13)年の2月14日に病のため没した人物である。

彼の任期中には、平良頭忠導氏玄安ら54名の「台湾遭害事件」や「ドイツ商船ロベルトソン号宮国沖遭難」などの事件がおきている。「琉球国が琉球藩」となったのも、彼の任期中のことである。

この墓碑は、これらの事件と直接かかわりはないが、花城親雲上が在番として宮古島に赴任してきたことの証拠であり、旧藩末期におきた事件等を彷彿とさせる貴重な金石文である。

【Designated by the City:Classical Literature】Tombstone of Ongawa Satonushi Pechin

Built in the Bakumatsu period, this tombstone is old in comparison to other old tombstones found today. It is built with sandstone, measuring 62cm in height; 33cm horizontally, and the width at the upper portion is 5 to 14cm, and the lower portion is 17cm.

Inscribed on the tombstone from the upper-right are the characters: 支流長真氏恩河仁也、乾隆年間卒。向姓恩河里之子親雲上墓、同治十一年壬申在番同氏花城親雲上記. Lotus flowers are depicted at the bottom part. The words were written by Hanagusuku Pechin, an official dispatched here in 1872 from the King’s government in Shuri. He died from illness on February 14, 1874.

During his period of duty, numerous events occurred, such as the Taiwan Sogai Incident where 54 men perished including Chudo-uji Genan of Hirara, the shipwreck off the coast of Miyaguni, of the German merchant ship, the Robertson, and others. The annexation of the Ryukyu Kingdom also happened during his tenure of duty.

The tombstone is not directly connected to any of these incidents, but is evidence that Hanagusuku Pechin was sent as an official to Miyako Island, and is an important epigraph reminiscent of the incidents that occurred at that time of the Bakumatsu period.

【市指定典籍】 恩河里之子親雲上之墓碑

該墓碑建於舊番末期,比現存墓碑要古老一些。材料用的是砂岩(高62cm、橫33cm、上部寬5 ~ 14cm、下方17cm)。

碑文從右上方起刻有以下文字「支流長真氏恩河仁也、乾隆年間卒。向姓恩河里之子親雲上墓、同治十一年壬申在番同氏花城親雲上記」,下方描繪著蓮花花瓣的模樣。在這塊碑上,題字的花城親雲上是1872年(同治11年)從首里王府派遣來的在番(當差),1874年(同治13年)2月14日因病去世。

他的任期中,曾經發生了平良頭忠導氏玄安等54名的「台灣遇難事件」和「德國商船羅伯特森號宮國海上遇難」等事件。琉球國改為琉球藩也是在他任期中的事。

這塊墓碑雖然與上述事件沒有直接關聯,但證明了花城親雲上做為在番上任宮古島,也讓人聯想起舊番末期發生的這些事件,是非常珍貴的金石文。

【미야코지마시 지정 서적】 온가와사토누시 페친의 묘비

막부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묘비로써는 비교적 오래된 것이다. 모래암석(높이 62cm, 가로 33cm, 폭 위 5-14cm, 아래 17cm)이 재료로써 사용되었다.

묘비에는 오른쪽 위에서부터 “支流長真氏恩河仁也、乾隆年間卒。向姓恩河里之子親雲上墓、同治十一年壬申在番同氏花城親雲上記”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아랫쪽에는 연꽃 그림 모양이 그려져 있다.

이 비문을 쓴 하나구스쿠 페친은, 1872년에 슈리 왕부에서 파견된 관리로 1874년 2월14일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임기 중에는 히라라의 주도 씨 겐안 등 54명의 “대만 조해遭害 사건”, “독일 상선 로버트슨호 미야구니 앞바다 조난” 등 여러 사건이 발생했다. “류큐국이 류큐번藩”이 된 것도 그가 임기 중인 시기였다.

이 묘비는 이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구스쿠 페친이 관리로써 미야코섬에 부임했다는 것의 증거이다. 막부 말기에 일어난 사건 등을 방불케하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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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涯学習部 生涯学習振興課
電話:0980-72-3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