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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指定:史跡】仲屋金盛ミャーカ

〔なかやかなもりみゃーか〕

「仲屋金盛ミャーカ」は、忠導氏仲宗根家の東方、外間御嶽の北方にあって、忠導氏一門では、仲屋金盛の墓と言い伝えている。墓の規模や形態は、大半が土砂に埋もれて明らかでないが、石棺の蓋と思われる縦210cm、横120cm、厚さ22cmの巨石が露出している。仲屋金盛は、16世紀初頭に宮古島の主長であった仲宗根豊見親(とうゆみゃ)の嫡子である。弟に祭金豊見親や知利真良豊見親(とうゆみゃ)らがいる。
「八重山のオヤケアカハチの乱」(1500年)・「与那国の鬼虎の乱」(1522年頃)に父豊見親(とうゆみゃ)に従って従軍。父豊見親(とうゆみゃ)の没後、その跡を継いで宮古島の支配者となったが、1532年頃宮古島の東南部で勢力のあった金志川那喜太知豊見親(とうゆみゃ)を殺害したかどで首里王府の問責にあい、自害した人物である。
この事件により、豊見親(とうゆみゃ)の称号は廃止され、代わって、首里王府の任命による頭制が施かれることになった。因に、忠導氏正統系図家譜は、金盛について「玄武中屋豊見親西外間為小祖、就不届不継家督」とのみ記している。
16世紀初頭、宮古で起きた歴史的諸事件並びに世情を考える上で、この「仲屋金盛ミャーカ」は重要な史跡である。

【Designated by the City:Historic Site】Nakayakanamori Myaka

The Nakayakanamori Myaka is located east of the Nakasone family home of the Chudo-uji Clan, north of the Hokama Utaki sacred site. In the Chudo-uji Clan, it has been told that it is the tomb of the Nakayakanamori. Since majority of the tomb is buried under the soil, the scale and form of it is not clear. However, a large stone, 210cm in length, 120cm in width, and 22cm in thickness, thought to be the lid of the coffin is protruding from the ground. Nakayakanamori is the first son of Nakasone Tuyumya, the chief of Miyako Island the beginning of the 16th century. His younger brothers include Matsurigani Tuyumya and Chirimara Tuyumya.
He joined his father Tuyumya in the army to fight in the battle of Oyake Akahachi in Yaeyama (1500), and the battle of Unitora in Yonaguni (around 1522). After his father, Nakasone Tuyumya, died, he took over as the leader of Miyako Island. However, in around 1532, he was questioned by the royal government in Shuri about murdering Kinsuka Nagitatsu Tuyumya, who had great power in southeast Miyako Island. He later killed himself. After this incident, the title of Tuyumya was abolished, and instead, the royal government in Shuri appointed chiefs.
The only cause of Kanamori’s fate recorded in the family records of the main lineage of the Chudo-uji Clan is: 玄武中屋豊見親西外間為小祖、就不届不継家督.
The Nakayakanamori Myaka is an important site when studying the historic incidents and the ways of the society in Miyako at the beginning of the 1th century.

【市指定:史跡】仲屋金盛巨石墓

「仲屋金盛巨石墓」位於忠導氏仲宗根家的東方、外間御嶽的北方,據說,是忠導氏一門的仲屋金盛的墳墓。由於墳墓的大半部分被埋在沙土中,其規模和形態並不明瞭,只有一塊長達210公分、寬120公分、厚22公分貌似石棺蓋子的巨石露出在外。仲屋金盛是16世紀初期宮古島的頭領仲宗根豐見親的嫡子,他有幾個弟弟名叫祭金豐見親和知利真良豐見親等。
「八重山的遠彌計赤蜂之亂」(1500年)和「與那國的鬼虎之亂」(1522年左右)時,跟隨其父豐見親從軍,其父豐見親死後,金盛繼承遺志成為宮古島的統治者。1532年時,因為殺害了宮古島東南部頗具勢力的金志川那喜太知豐見親,而受到首里王府的指責,自盡身亡。
自從這個事件以來,豐見親的稱號就被廢止掉,取而代之的是首里王府任命的頭制。順便提一下,忠導氏正統系圖家譜中,關於金盛的記錄只有一句話「玄武中屋豐見親西外間為小祖、就不届不繼家督」。
在思考16世紀初期,宮古發生的各種歷史事件和時事時,這個「仲屋金盛巨石墓」是個重要的歷史遺跡。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나카야 가나모리 먀카(묘지)

“나카야 가나모리 먀카(묘지)”는 주도 씨 나카소네 일가의 동쪽, 호카마 우타키의 북쪽에 소재한다. 주도 씨 일가는 나카야 가네모리의 묘지라고 전하고 있다. 묘지의 규모나 형태는 대부분이 토사에 묻혀 분명하지 않지만, 석관의 뚜껑으로 추정되는 세로 210cm, 가로 120cm, 두께 22cm의 커다란 돌이 바깥쪽을 향해 노출되어 있다.
나카야 가네모리는 16세기 초에 미야코의 주장이었던 나카소네 두유먀의 적자이다. 남동생으로 마쓰리가니 두유먀나 지리마라 두유먀 등이 있다. “야에야마 오야케 아카하치의 난”(1500년),” 요나구니의 우니도라의 난”(1522년 쯤)에 부친 두유먀를 따라 종군했다. 부친 두유먀 사망 후, 대를 이어 미야코섬의 통치자가 되었으나, 1532년 경, 미야코섬의 동남부에서 세력을 떨쳤던 긴스카 나기타쓰 두유먀를 살해한 것으로 슈리 왕부의 문책을 받아 자해한 인물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두유먀의 칭호는 폐지되었고, 대신 슈리 왕부의 명에 의한 통치가 시작하였다.
참고로 주도 씨 정통 족보에는, 가나모리에 대해“玄武中屋豊見親西外間為小祖、就不届不継家督”라고 적혀있다. 16세기 초에 미야코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당시 정세를 생각하는데 있어 “나카야 가나모리 먀카”는 중요한 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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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涯学習部 生涯学習振興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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